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풀이 자랍니다. 한때 전교생이 천 명을 넘던 학교였습니다. 운동회 날이면 마을 전체가 들썩였던 곳입니다. 지금은 교문이 잠겨 있습니다. 마지막 졸업생 몇 명을 배웅하고 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이런 학교가 전국에 수천 곳입니다.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적막이 자랍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대까지 떨어졌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면 인구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수치입니다. 전쟁이나 전염병 없이 이런 속도로 인구가 줄어든 나라는 인류 역사에 없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은 일찍이 한국을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첫 번째 나라로 지목한 바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과장처럼 들렸던 경고가 지금은 현실의 숫자가 되었습니다.
이 현상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서, 힘든 것을 못 견뎌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그림이 보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낳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집값은 평생 벌어도 닿기 어렵고, 일자리는 불안하고,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경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그 경쟁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출산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의 조건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가 만든 결과입니다.
생각해보면 윗세대가 아이를 많이 낳았던 것도 그 시대의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자식이 노후 보장이었고, 공동체가 육아를 함께 짊어졌고,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세 가지가 모두 흔들렸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놓인 조건 안에서 선택합니다. 조건이 달라졌는데 선택만 예전 같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학교가 닫히고, 군대가 줄고,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고, 연금을 받칠 세대가 얇아집니다. 지금의 중장년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후를 받쳐줄 사회가 바로 그 줄어드는 세대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 앞에서 필요한 것은 젊은 세대를 향한 질책이 아니라 질문의 전환입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회라면 아이를 낳고 싶어질까.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은 정부만의 몫이 아닙니다. 아이 울음소리를 반기는 분위기, 아이 키우는 부모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시선 같은 작은 것들도 그 답의 일부입니다.
풀이 자라는 운동장에 다시 아이들이 뛰어놀게 하는 일. 그것은 한 세대의 숙제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세대의 숙제입니다.
저는 오늘 낭독을 하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낭독에서 내 마음에 남은 한 문장은,
이상으로 낭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